일상

시인 이상의 연애 편지 전문

iday 2021. 7. 22. 00:41

안녕하세요 이데이입니다.

 

 

 

어쩌다 보니 저의 포스팅은 늘 자정을 넘어 새벽에 이루어지는 것 같네요.

 

오늘은 일이 많기도 했고

책을 읽거나

다른 분의 에세이를 보면서

저의 생각들을 담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직은 말솜씨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제가 전에 스크랩해 놓았던

 

시인 이상 이 

짝사랑한 상대에게 보낸

자신의 감정을 담은

 편지를 포스팅해봅니다.

 

최근 겪은 개인적인 경험과도 결부되어

저도 다시 읽으며 그 여운과 뭉클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한 것이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에 있던 때 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이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 정희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다.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길,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네게로 와다오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적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다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희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야공(夜空)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에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든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던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짠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해서

쓰기로 한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마음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 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이 편지는 시인 이상이 작가 최정희에게 쓴 편지인데

당시 최정희 작가는 23세의 이혼녀였고

훗날 남편이 되는 시인 김동환과 관계를 맺고 있어

 ‘이상에게서 편지를 여러통 받았지만 모두 찢어버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편지는 시간이 흘러 최정희 작가 사후에

딸인 소설가 김채원씨에 의해 공개된 것이고

 

최정희, 김동환 사이에서 난 따님 김채원 씨는

소설가가 되어 

이상문학상를 받게 되십니다.

묘한 인연이죠.

 

여성이 여성에게 쓴 연애 편지라는 사실이나

성별을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간절함, 원망, 애틋함 모두를 느낄 수 있는 글이어서

주무시기 전에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도 좋은 하루 되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